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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한강 <채식주의자> 리뷰 - 육체적 거부로 드러낸 내면의 절규

by 김하츄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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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물이 되고 싶었던 이유

<채식주의자>는 평범한 주부였던 영혜가 어느 날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이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한 채식 선언이 아니다. 한강은 영혜의 침묵을 통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드러낸다. 영혜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로는 자기 존재를 지킬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말 대신 몸으로, 욕망 대신 거부로 저항한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이라는 행위 자체보다, 그것이 인간관계 속에서 어떻게 오독되고 폭력적으로 소비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2. 세 갈래 시선

이 소설은 총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의 시점은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에 의해 서술된다. 영혜 자신을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지 않는다. 나는 이 구조에서 강한 불편함을 느꼈다.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야말로 영혜가 처한 억압의 가장 정확한 상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은 영혜를 사회적 규범의 도구로, 형부는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 언니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본다. 이들은 각자의 프레임을 통해 영혜를 해석하지만, 결국 누구도 그녀의 내면에 다가가지 못한다. 독사로서 나는 이러한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점점 더 영혜라는 인물의 중심을 향해 다가가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그 욕망은 아마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었던 거 같다.

 

3. 꿈, 말할 수 없는 고통

소설 초반, 영혜가 갑자기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꿈 때문이다. 그녀는 고기를 먹는 끔찍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꿈꾸며 그로 인해 식욕과 식육을 동시에 잃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한강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직감했다. 그것은 단순한 악몽이 아니라, 사회가 그녀에게 강요한 억압과 폭력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무의식이 선택한 유일한 해서 방식이었다. <채식주의자>에서 꿈은 중요한 장치다. 꿈은 말보다 먼저 찾아오고, 이성보다 더 깊숙한 곳을 건드린다. 영혜는 꿈을 통해 '식물로의 변이'를 예고하며, 그녀가 더 이상 인간 세계의 법칙에 따르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4. 몸을 통한 저항과 파괴

이 소설에서 몸은 어떠한 상징처럼 느껴졌다. 영혜는 말 대신 몸으로 반응하고, 몸으로 거부하며, 몸을 지워간다. 그녀는 점점 음식을 끊고, 육체를 버리듯 말라가며, 결국은 자신이 식물이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설정이 불편했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꼈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영혜의 선택은 어떤 진실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몸을 파괴하는 방식은 역설적으로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마지막 시도였다. 그 어떤 언어도, 설명도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했기에, 오직 몸이라는 마지막 수단만이 남은 것이다. <채식주의자>는 여성의 몸이 사회와 관계 안에서 얼마나 쉽게 타자화되고, 도구화되는지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런 몸을 스스로 파괴함으로써만 주체로 설 수 있다는 비극은 읽는 내내 나를 무겁게 만들었다.

5.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소설 속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폭력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다. 영혜의 남편은 그녀가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체면이 손상되었다고 느끼며 분노하고, 아버지는 딸에게 고기를 억지로 먹이려다 손찌검까채식지 한다. 언니는 영혜의 상태를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만, 그 방식은 결국 통제와 규범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가족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온함 이면의 위선을 떠올렸다. 가족은 보호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운 폭력이 허용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채식주의자>는 그 점을 정확히 깊어낸다. 영혜는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을 지킬 수 없었고,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다.
 

6.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채식주의자는>는 쉽게 말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 한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읽는 동안 내내 어려웠고, 불편하고, 불쾌하기도 했으며, 끝내 안타까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전달하려는 핵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 사회가 만들어낸 정상성의 폭력, 존재를 지우면서 존재하려는 모순... 이 모든 것이 영혜하는 인물을 통해 응축되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 존재의 복잡함, 여성의 몸과 욕망, 말해지지 않은 상처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채식주의자>는 결코 친절한 이야기가 아니며, 위로를 주는 결말도 없다. 그러나 그 대신 진실을 향한 뚝심 있는 시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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