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를 처음 알게 된 건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 준 북 리뷰 영상이었다. 썸네일에는 "이 책 한 권이면 불안이 사라집니다!"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세상에 불안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뉴스만 틀어도 전염병, 기후 재난, 전쟁 소식이 쏟아지는데 말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예상치 못한 통계를 마주하고 당황했다.
1. 세상은 정말 그토록 위험할까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의사이자 통계학자다. 평생을 세계 곳곳을 다니며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계 극빈층 비율을 몇 퍼센트일까요?". 놀랍게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보다 훨씬 높게 답했다. 실제는 어떨까? 1800년대에는 인류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도 못 버는 극빈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과 9% 정도에 불과하다. 백신을 맞는 어린이 비율, 여성의 교육 기간, 평균 수명까지 대부분의 지표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다. 이 사실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비관적인 안경을 쓰고 살았는지 깨달았다.
2. 뇌가 우리를 속이는 다섯 가지 본능
책은 우리의 왜곡된 인식을 만드는 '본능'들을 여러 챕터로 나누어 보여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게 바로 '극단 본능'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장 극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래서 전쟁이나 테러 뉴스는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평화롭게 잘 살아가는 수많은 나라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크기 본능'이다. 예를들어 아프리카에 HIV 감염자가 몇 백만 명 있다는 뉴스는 크게 보도되지만, 같은 문장에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지내는 수천만명의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를 그저 가난과 질병의 땅으로만 기억한다.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은 이 본능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다시 일깨워 준다. 나는 예전부터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해진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사실 그건 내 뇌가 자극적인 소식만 기억하고 안전하고 긍정적인 데이터는 흘려보냈기 때문이었다.
3. 가봉 병원에서 배운 것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가봉의 한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저자는 가봉에서 의사로 일하던 시절, 자신이 치료한 환자 수를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통계를 다시 살펴본 그는 충격에 빠졌다. 가봉 정부가 교통 인프라에 투자한 덕분에 수많은 임산부가 목숨을 건 긴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됐고, 마을 보건소에서 충분히 돌봄을 받아 더 큰 병원까지 오지 않아도 됐다. 그 결과 산모 사망률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 일화를 통해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강조한다. 우리의 뇌는 드라마틱한 병원 수술 장면엔 쉽게 감탄하지만, 길 하나 잘 닦아놓은 정책의 성과는 과소평가한다. 나도 그랬다. 거창하고 가몽적인 것만 진짜 변화라고 믿었다. 하지만 팩트풀니스가 말하는 변화는 조용하고, 데이터로 증명된다.
4. 네 가지 소득 수준
책에는 네 가지 소득 단계가 나온다. 레벨1은 하루 1~2달로도 벌지 못하는 사람들, 레벨2는 조금 더 나아 하루 4달러 안팎. 레벨3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가 있는 집에서 살며, 레별4는 우리처럼 자동차와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이다.
놀라운 건 세계 인구 대부분이 레벨 2와 3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동안 지구를 '잘 사는 나라 vs 못 사는 나라'로만 나눴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다양했다. 저자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상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천천히 좋아지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막연한 불안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5. 마무리하며
<팩트풀니스>를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뉴스가 조금 덜 무섭게 느껴졌다. 물론 여전히 뉴스 헤드라인을 보면 가슴이 철렁하지만, 잠깐 멈추고 "그게 전부일까?"를 스스로 묻는다. 이 책은 내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진 않았다. 오히려 불안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해 주었다. 나는 앞으로도 이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을 것 같다. 불안에 사로잡힐 때마다 데이터와 통계로 눈을 씻고, 조금 더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게 팩트풀니스가 내게 가르쳐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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