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넓어진 무대
<범죄도시 2>는 서울을 벗어나 베트남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벌어지는 한국인 납치 살인 사건은 공간만을 옮긴 것이 아니다. 영화는 이 장소의 변화 속에서 긴장을 확장하고, 액션의 밀도를 높인다. 전작에서 보여준 골목과 시장의 리얼함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대신 이 낯선 배경은 형사 마석도의 본능을 더욱 거칠게 끌어올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치안의 공백, 언어의 장벽, 수사의 한계 속에서 그는 모든 것을 몸으로 해결한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극적인 장면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는다. 현실에서 가능했던 이야기라는 점이 더 큰 공포로 다가오고, 그 안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2. 더 넓은 판에 선, 마석도
마석도(마동석)는 이전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다. 국경을 넘어 발생한 사건에 개입하고, 서로 다른 권력과 이해관계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그는 이전처럼 직진하지만, 이번엔 그 직진에 더 많은 감정과 판단이 담겨 있다. 형사라기보다 현장 그 자체가 되어 움직이는 그는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통제력을 잃지 않는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그의 몸짓에는 힘뿐 아니라 명확한 의지가 담겨 있다. 과장된 대사 없이, 짧은 말과 강한 행동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번 영화에서 마석도는 팀을 이끌고, 피해자를 안심시키며, 범인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다. 마동석은 이 역할을 통해 과거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인물로 발전했다.
3. 강해상, 닿지 않는 위협
손석구가 연기한 강해상은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 사건의 질서를 벗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회의 룰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대화 없이 행동하고, 계획보다는 충동에 가깝게 움직인다. 이 위험한 리듬이 극 전체에 날 선 긴장을 불어넣는다. 강해상은 분노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누군가를 해치고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무감각이 관객에게 더 깊은 위협으로 전달된다. 손석구는 이 인물을 내세우기보다 감추는 방식으로 연기한다. 눈빛을 낮추고, 표정을 고정한 채, 말없이 공간을 지배한다.
영화는 그를 이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을 덜어내면서, 인물이 가진 불가해함을 그대로 유지한다. 관객은 그를 따라갈 수 없고, 그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 그는 마석도의 반대편에 서 있는 또 다른 방식의 존재로 각인된다.
4. 액션이 남긴 흔적
<범죄도시 2>의 액션은 눈에 보이는 움직임보다 그 뒤에 남는 인상을 중요하게 다룬다. 마석도가 주먹을 휘두를 때, 관객은 박력보다 결심을 먼저 느끼게 된다. 화려한 동작은 줄었지만, 타격의 여운은 더 길게 남는다. 이 영화의 액션은 상황을 요약하는 언어다. 말보다 빠르게, 감정보다 먼저, 진심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마석도의 싸움은 싸움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의 격투는 형식적으로는 일대일 대결이지만, 그 속에는 책임, 피로, 분노가 얽혀 있다. 마석도는 승리를 위해 싸우지 않는다. 끝을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에 싸운다. 이 차이가 액션을 더 무겁고 사실적으로 만들었다.
5. 조연들의 유쾌함, 서사의 호흡
긴장감이 유지되는 이야기 속에서도 웃음을 만드는 장치는 분명히 필요하다. <범죄도시 2>는 이를 조연 캐릭터를 통해 훌륭히 구현한다. 장이수(박지환)와 오동균(허동원)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이야기의 이음매 역할을 한다. 장이수는 익살스럽지만 상황을 망치지 않는다. 그의 과장된 제스처, 한 박자 늦은 반응은 극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관객에게 짧은 쉼을 제공한다. 오동균 역시 과묵한 듯 보이지만 틈틈이 뱉는 멘트로 웃음을 유도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유쾌함으로 인해, 범인을 쫓는 장면에서도 이들의 대사는 건조한 상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조연들은 극을 가볍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장치가 되었고, 덕분에 이 영화는 끝까지 힘을 잃지 않는다.
6. 마무리하며
<범죄도시 2>는 속편의 한계를 뚫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 영화다. 전편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공간과 인물, 액션의 결을 전부 다르게 구성했다. 베트남이라는 배경은 범죄의 현실성을 넓혔고, 마석도와 강해상의 대결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마석도의 주먹보다 그의 멈칫거림에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움직이기 전에도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이었고, 싸운 뒤에도 말없이 책임을 떠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허술하지만 믿음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유쾌함은 이 거친 영화에 사람 냄새를 더했고, 그 덕분에 관객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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