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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말할 수없는 비밀> 리뷰 - 시간을 건너 기억을 남긴 사랑

by 김하츄 2025.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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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포스터.

1. 피아노로 시작된 인연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낡은 피아노 한 대로부터 시작된다. 주걸륜이 연기한 샹룬은 예술고등학교에 전학 온 피아노 영재다. 무심한 듯한 눈빛, 하지만 건반 앞에서는 누구보다 섬세한 감성을 표현해 내는 인물이다. 전학 첫날, 그는 오래된 피아노실에서 한곡의 연주를 듣는다. 그것이 샤오위와의 첫 만남이었다. 샤오위는 첫인상부터 어딘가 특별했다. 낯설지 않은데 어딘지 이질적이고, 고요한 눈동자 속에 지나치게 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샹룬은 그녀에게 빠져들고, 둘 사이엔 피아노를 중심으로 한 교감이 쌓여간다. 하지만 이 사랑은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샤오위는 항상 사라진다. 이유도 없이, 말도 없이, 그리고 다시 나타난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인상 깊었다. 샤오위는 마치 꿈처럼 다가왔다가 꿈처럼 사라진다. 영화는 처음엔 아무런 설명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은 샹룬의 눈을 따라가며 '무언가 이상하다'는 감각을 차곡차곡 쌓는다. 그 이상함은 두려움이 아니라 궁금증을 동반하고, 결국 슬픔으로 이어진다. 이 감정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구조라고 생각한다.

 

2. 사라지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

샤오위는 현실의 인물처럼 행동하지만, 영화는 그녀가 이 세계에 완전히 속해 있지 않다는 암시를 끊임없이 던진다. 친구들은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사진 속에도 그녀는 없다. 교실에서 그녀가 '자기 자리에 다른 학생이 앉아 있었다'고 말했을 땐, 그게 그냥 이상한 농담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대사는 너무 절절한 고백이었다. 샹룬은 그녀를 붙잡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점점 흐릿해진다. 때론 눈앞에 있어도 닿을 수 없고, 함께 있어도 이해할 수 없다. 관객은 이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보며 혼란을 느끼지만, 바로 그 혼란이 사랑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는 그런 감정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설명보다 시선으로, 말보다 음악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더 마음에 오래 남는다. 감정의 겉면이 아닌 깊은 속살을 보여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3. 시간이라는 틈 사이에서 

영화의 전개가 절정에 다다를 즈음, 우리는 샤오위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녀는 과거의 사람이다. 특정한 피아노 곡을 연주함으로써 현재로 올 수 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설정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장치지만, 단순한 판타지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이 시간 여행의 설정이 '기억'과 '그리움'을 형상화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음악을 들을 때, 어느 날의 공기와 감정을 함께 떠올린다. 과거의 어떤 장면이 그 멜로디에 얽혀 다시 살아난다. 샤오위의 존재는 그런 기억의 집합 같았다. 명확하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고,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녀가 연주를 멈추면 사라진다는 설정 또한 시적이다. 감정이 사라지면 기억도 희미해지고, 결국은 존재조차 흐려진다. 피아노는 사랑의 언어이고, 동시에 시간을 잇는 매개다. 그 위에 얹힌 감정은 진실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이 영화는 시공간의 판타지를 차용했지만, 결과적으로 더 현실적이고 더 인간적인 감정으로 귀결된다.

 

4. 음악이 남긴 잔향

샤오위와의 추억이 점점 현실에서 지워지는 가운데, 샹룬이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은 음악이었다. 그녀가 남긴 곡은 감정 그 자체였다. 그 곡을 연주할 때마다 그는 그녀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피아노 배틀'은 극 중에서도 가장 영화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순간이다. 손 끝에 감정을 쏟아내며, 리듬 속에 숨겨진 언어가 살아난다.

샹륜과 샤오위는 피아노로 대화하고, 피아노로 사랑한다. 말로 전할 수 없는 마음을 그들은 음표로 남긴다. 샤오위는 점점 현실에서 사라졌지만, 그녀가 남긴 멜로디는 계속 샹룬의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귀 안에서 살아간다. 음악은 기억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고, 감정이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매개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너무나 섬세하게 보여준다.

 

5. 마무리하며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그 여운은 조용하지 않다. 이 영화는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의 마음 깊은 곳을 가만히 두드리고, 말보다 느린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보고 나면 곧바로 감상평을 쓸 수 없는 영화다. 어떤 장면은 며칠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다가오고, 어떤 대사는 몇 번을 곱씹은 뒤에야 진심이 들린다. 이 영화는 시간이라는 경계를 허물고, 기억이라는 통로를 열어 사랑을 이어주는 영화다. 그리고 그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진심으로 기억할 때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잊힌 사람 하나쯤은 마음속에 조용히 꺼내보게 된다. 말로 다 하지 않아도 괜찮은 감정.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남아 있는 장면.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건네는 진짜 이야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