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낯선 세계의 시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10살 소녀 치히로가 가족과 함께 새로운 마을로 이사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 들어간 이상한 터널에서 시작된다. 그 터널은 시간이 멈춘 듯한 폐허를 지나, 화려하지만 기묘한 거대한 목욕탕 마을로 이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신령들과 요괴들만이 드나드는 세계이며, 규칙은 현실과 전혀 다르다. 치히로의 부모는 무단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이유로 돼지로 변하고, 치히로는 혼자 이 낯선 세계에 남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선 '유바바'라는 마녀 밑에서 일해야 하고, 그 대가로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이름을 빼앗기면 자신의 본래 기억과 존재를 잃게 되며, 이는 존재의 해체와 같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하나의 세계를 통과하면서 한 아이가 자신을 잃고 다시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치히로가 겪는 혼란과 선택, 용기는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모든 변화를 상징한다.
2. 탐욕이 만든 기묘한 세계
'가마터'라는 공간은 마치 현대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외형은 화려하고 기능은 정교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직 이익과 효율, 권력만이 움직이는 질서가 지배하고 있다. 그곳에서 만난 가오나시는 사람들의 욕망을 더욱 증폭시키는 존재다. 금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사람들의 본성을 드러나게 하고, 이 세계가 얼마나 탐욕으로 쉽게 무너질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돈을 좇다가 결국 괴물의 먹잇감이 되고 마는데, 이 장면은 현실의 판타지 요소라기보다 현실의 풍경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가마터 안에서는 심지어 정령조차도 대접받는 방식이 '더럽고, 쓸모없는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진다. 치히로가 하수구의 썩은 신을 목욕시켜 주는 장면은, 겉으로 보기엔 흉물스럽고 더럽지만 실은 오염된 자연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외면한 환경 문제를 상징해 주었다.
3. 정체성의 탈취와 회복
유바바는 권력의 상징이다. 그녀는 이 세계를 통제하며, 일하는 자들에게 '계약'을 통해 이름을 빼앗는다. 이름은 그 존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표식이기에,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잊는 것이었다. 치히로가 '센'이 되는 순간, 그녀는 자기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점점 타인의 질서에 동화되어 간다. 그러나 하쿠의 도움과 자신의 의지로 치히로는 끊이멊이 원래의 자신을 찾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 과정은 매우 은유적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회사, 학교,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역할'로 존재할 때가 많다. 팀원, 학생, 직원, 엄마, 아빠... 그 많은 이름 사이에서 진짜 '나'를 잊고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기 위해서는 끝까지 기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쿠 또한 같은 운명을 지닌 존재다. 그는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긴 채 살아가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은채 이용당한다. 치히로가 그의 진짜 이름을 떠올리게 해 줌으로써 그는 본래의 자아로 되돌아가는데, 이 장면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회복하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4. 하쿠와 치히로
하쿠는 용의 모습을 한 강의 정령이었지만, 인간 세계의 개발과 오염으로 자신이 섬기던 강이 사라지면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이 장면은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이자, 잊혀진 신성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치히로는 그런 하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 불러줌으로써, 하쿠가 강의 정령이었음을 떠올리게 도와주는데, 하쿠의 돌아온 기억은 마법을 깨는 열쇠가 되어 유바바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처럼 둘의 관계는 로맨스가 아니라,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 만나는 '성장의 동행자'를 상징한다. 누군가는 나를 일깨워주고, 나는 누군가를 살려내는 존재가 되는 그런 인간관계의 힘은 말보다 깊고, 눈물보다 따뜻하게 전해진다.
5. 마무리하며..
어릴적 봤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저 요괴들이 사는 세계에 들어간 치히로의 모험담처럼 보였지만, 지금 보게 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탐욕, 권력, 욕망, 환경, 정체성 등 많은 메시지가 보였다. 탐욕이 만든 세계에서 정체성을 잃은 인간이 어떻게 진짜 '나'를 찾아가는지를 보여주는 한 편의 철학적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보게 되는 작품이고, 볼 때마다 다른 시선으로 진정한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는 명작이다. 상상력이라는 언어로 표현된 진실이 담긴 이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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