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지하에서 언덕 위까지
기생충은 공간의 대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과 언덕 위 고급주택에 사는 박사장 가족. 이 둘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먼 거리에 존재한다. 기택네는 반지하 창문으로 겨우 빛을 들이고, 와이파이를 훔쳐 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박사장네는 탁 트인 마당과 커다란 창문 너무 햇살 가득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살아간다. 영화는 이 두 공간을 통해 단순한 빈부 격차를 넘어 삶의 질감 자체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코믹한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이 대비는 점점 더 깊은 구조적 모순으로 이어진다. 나는 영화 초반, 기택네가 피자박스를 접는 장면에서부터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은 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연민이자,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을 수많은 '기택 가족'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그렇게 한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공간을 곧 메시지로 만든 영화였다.
2. 웃음 뒤 숨은 냉혹한 질서
영화는 기택 가족이 한 명씩 박사장 집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기우는 가정교사로, 기정은 미술치료사로, 기택이 운전기사로, 충숙이 가사도우미로 박사장네에 스며들수록 관객은 묘한 불편함과 동시에 기이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가족은 영리하고 치밀하며, 무엇보다 팀워크가 좋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애초에 남의 자리를 빼앗고 거짓말로 쌓은 것이기에 지속될 수 없다. 박사장 가족이 결코 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갑', 과 '을'의 구조로 유지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가족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계획이 너무도 안쓰럽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 번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이 지점에서 웃음을 걷어내고 서서히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3. 계단, 빗물, 냄새
기생충의 가장 인상 깊은 연출은 단연 '계단'과 '비' 그리고 '냄새'다. 계단은 위로 오를수록 부유함을,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난을 상징하며, 기택 가족이 언덕 위 저택에서 반지하 집까지 내려가는 장면은 이 사회에서 계급이 얼마나 단단하지를 보여준다. 비 또한 그들을 구분짓는 기준이 된다. 박사장 가족에게 비는 분위기 있는 소나기였지만, 기택 가족에겐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재난이었다. 그리고 냄새는 이 모든 불평등을 집약한 상징이다. 박사장은 늘 기택의 냄새를 인식했고, 그것이 위화감을 넘어서 혐오로 느껴진 순간부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영화는 이처럼 비가시적인 요소까지 감각적으로 활용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나도 박사장의 코를 찌푸리는 장면에서, 그것이 단지 냄새가 아닌 '차별의 감각'이라는 걸 확연히 느꼈다. 그것은 곧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선언이며, 그런 차별이 어떻게 폭력을 만들어내는지를 철저히 보여준다.
4. 지하실의 존재, 외면해온 진실
영화 중반부, 지하실이라는 또 다른 공간이 등장하면서 기생충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하실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곳에 숨어 있던 인물은 이 사회의 소외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보여준다. 그의 등장은 박사장 가족조차도 모르는 세계가 그 아래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지하실의 사람들'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는 이들은 단지 극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로 조명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또한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위와 아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간극이야말로 진짜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5. 결말 이후, 남겨진 질문들
기생충의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운 건 이후에 남는 여운이다. 기택은 결국 지하실로 숨어들고, 기우는 그를 구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미래가 도달 가능한것인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짐은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라 '불가능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모든 주제를 정리하는 가장 슬픈 고백이라고 느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누구의 아래에 있지는 않은가.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끌었고, 결국 아카데미에서도 인정받았다. 그것은 수상의 의미를 넘어, '계급'과 '불평등'이라는 주제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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