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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 <기생충> 리뷰 - 계급의 풍경

by 김하츄 2025.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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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포스터.

1. 반지하에서 언덕 위까지

기생충은 공간의 대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 가족언덕 위 고급주택에 사는 박사장 가족. 이 둘은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먼 거리에 존재한다. 기택네는 반지하 창문으로 겨우 빛을 들이고, 와이파이를 훔쳐 쓰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박사장네는 탁 트인 마당과 커다란 창문 너무 햇살 가득한 공간에서 여유롭게 살아간다. 영화는 이 두 공간을 통해 단순한 빈부 격차를 넘어 삶의 질감 자체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코믹한 방식으로 접근하지만, 이 대비는 점점 더 깊은 구조적 모순으로 이어진다. 나는 영화 초반, 기택네가 피자박스를 접는 장면에서부터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것은 이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연민이자, 이 세상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을 수많은 '기택 가족'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그렇게 한순간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공간을 곧 메시지로 만든 영화였다.
 

2. 웃음 뒤 숨은 냉혹한 질서

영화는 기택 가족이 한 명씩 박사장 집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재미있게 묘사한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기우는 가정교사로, 기정은 미술치료사로, 기택이 운전기사로, 충숙이 가사도우미로 박사장네에 스며들수록 관객은 묘한 불편함과 동시에 기이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이 가족은 영리하고 치밀하며, 무엇보다 팀워크가 좋다. 하지만 그들의 계획은 애초에 남의 자리를 빼앗고 거짓말로 쌓은 것이기에 지속될 수 없다. 박사장 가족이 결코 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관계는 철저하게 '갑', 과 '을'의 구조로 유지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가족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계획이 너무도 안쓰럽고 허망하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 한 번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이 지점에서 웃음을 걷어내고 서서히 진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 '기생충'중 한 장면.

3. 계단, 빗물, 냄새

기생충의 가장 인상 깊은 연출은 단연 '계단'과 '비' 그리고 '냄새'다. 계단은 위로 오를수록 부유함을, 아래로 내려갈수록 가난을 상징하며, 기택 가족이 언덕 위 저택에서 반지하 집까지 내려가는 장면은 이 사회에서 계급이 얼마나 단단하지를 보여준다. 비 또한 그들을 구분짓는 기준이 된다. 박사장 가족에게 비는 분위기 있는 소나기였지만, 기택 가족에겐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재난이었다. 그리고 냄새는 이 모든 불평등을 집약한 상징이다. 박사장은 늘 기택의 냄새를 인식했고, 그것이 위화감을 넘어서 혐오로 느껴진 순간부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영화는 이처럼 비가시적인 요소까지 감각적으로 활용하며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나도 박사장의 코를 찌푸리는 장면에서, 그것이 단지 냄새가 아닌 '차별의 감각'이라는 걸 확연히 느꼈다. 그것은 곧 '당신은 나와 다르다'는 선언이며, 그런 차별이 어떻게 폭력을 만들어내는지를 철저히 보여준다.
 

4. 지하실의 존재, 외면해온 진실

영화 중반부, 지하실이라는 또 다른 공간이 등장하면서 기생충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지하실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 사회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곳에 숨어 있던 인물은 이 사회의 소외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보여준다. 그의 등장은 박사장 가족조차도 모르는 세계가 그 아래 존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지하실의 사람들'을 외면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영화는 이들은 단지 극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로 조명한다. 이 장면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또한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위와 아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간극이야말로 진짜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5. 결말 이후, 남겨진 질문들

기생충의 결말은 충격적이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운 건 이후에 남는 여운이다. 기택은 결국 지하실로 숨어들고, 기우는 그를 구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미래가 도달 가능한것인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 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짐은 현실에서 닿을 수 없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희망'이 아니라 '불가능함'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모든 주제를 정리하는 가장 슬픈 고백이라고 느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가. 누구의 아래에 있지는 않은가. 이 영화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공감대를 이끌었고, 결국 아카데미에서도 인정받았다. 그것은 수상의 의미를 넘어, '계급'과 '불평등'이라는 주제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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